[𝐏𝐂 𝐯𝐞𝐫.] 𝐎𝐮𝐭 𝐨𝐟 𝐩𝐮𝐫𝐞 𝐧𝐞𝐜𝐞𝐬𝐬𝐢𝐭𝐲 (上_𝟐𝟏𝟎𝟔𝟏𝟐)

📺 𝐋𝐚𝐰 𝐒𝐜𝐡𝐨𝐨𝐥

(로스쿨)

 

#삐죠 #죠삐 #솔삐지호 #솔b지호

 

※오메가버스 설정을 넣은 강 솔B + 서지호.

 

한국 대 로스쿨, 명문대 중 최고라고 손꼽히는 이 곳은 다수의 알파 집단들과 그 밑으로 베타, 오메가 집단들이 구성하고 있다. 물론 시대가 시대인만큼 대놓고 특정 인자를 비하하는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시선들과 수군거림은 어디든지 존재하는 법, 그중 강 솔B는 집안 대대로 우성 알파 출신으로 많은 학우들의 부러움을 샀다. 정작 강 솔B는 그런 평가를 딱히 달가워하진 않았지만 출신덕에 학교를 잘 다니는 것도 일종의 스펙이라는, 그만큼만 생각하고 있었다. 그 날이 오기 전까진. 

 

어김없이 복사실 뒤에 있는 아지트에서 스터디원들과 같이 판례 공부를 하고 있던 찰나,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. 

 

"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. 먼저 갈게요."

 

"어, 벌써 가려고? 진짜 부럽다."

 

"누나는 아직 할 게 산더미던데, 밤은 새야 그 판례들 다 보지 않겠어요?"

 

"누가 팩트폭력기 아니랄까 봐, 서지호 진짜 너무 하네."

 

"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니면서 생색 부리지 마세요. 그럼 갑니다."

 

무슨 일인지 지호가 스터디 도중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였고, 의외라는 듯의 시선들이 그에게 닿았다. 하지만 곧 다들 제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앞에 놓인 자료들에 열중하였고, 들어가서 푹 쉬고 몸 잘 챙기라는 준휘의 말을 끝으로 지호는 복사실에서 나왔다.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서지호는 몸이 안좋아서 나간 것 같겠지만 사실 그에겐 '사정'이라는 것이 있었으니.

 

서지호는 우성 오메가였던 것이다. 이 로스쿨 안에서 철저히 억제제를 챙겨 먹으며 본인의 특성을 숨겨왔다. 공부한다고 해서 약을 복용하는 것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놓고 먹을 수도 없으니 대충 둘러대고 나와서 먹으려던 참이었고. 지호는 복사실 근처에 있는 정수기의 물을 떠 제 주머니에 있던 틴케이스에서 약을 하나 꺼내 빠르게 삼켰다. 그 놈의 페로몬, 히트 사이클이 뭐라고. 한창 바쁠 때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.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뭣 같은 유전형질. 쉬겠다고 했으니 이제 기숙사에 들어가서 한숨 푹 자고 나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고 생각하고 근처 비상구 쪽으로 가던 그때, 갑자기 눈앞이 핑 돌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어지러움을 느껴 계단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.

 

'젠장, 뭐야. 주기적으로 먹던 때에 먹었는데. 대체 왜!'

 

사실 조금씩 효능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건 느꼈지만 약국에 갈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. 그것보단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과 자료들이 더 많았기도 했고. 미루지 말고 갔어야 했는데.

 

"후으, 후...진짜 도움 안 되네."

 

지호는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며 일단 구석에 웅크려서 앉았다. 진정될 때까지만 이렇게 있다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어서 학교 뒷문으로 나가서 기숙사로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일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.

 

"하, 하아. 여기 언제까지 앉아있어야 하는 거야. 할 게 많은데."

 

비교적 학생들이 많이 안 다니는 곳이라곤 하지만 만약에 어떤 질 나쁜 알파한테 걸리기라도 하면,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다. 그저 유전형질 하나, 그것때문에 이렇게 신경 쓰고 불안해하고 모든 예상의 수를 생각해야한다. 정말 머리 아픈 일이었다.

 

'그렇게 되면, 뭐. 다들 내 정체를 알게 되는 건가.'

 

여태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, 지금 와서 그 노력이 무너질 수는 없었다. 아직 숨이 가쁘고 어지러웠지만 더 오래 앉아있을 순 없어서 지호는 무리해서라도 몸을 일으킬 생각이었다. 그 순간 달칵거리며 비상구의 문이 열렸다.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.

 

"뭐야, 컨디션 안좋다더니. 그게 이런 거였어?"

 

"...됐으니까 저, 리가."

 

지호 눈앞에 다름 아닌 강 솔B가 서 있었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. 스터디원 중에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을 뽑으라면 그는 주저 없이 솔B를 뽑을 것이다.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그녀에게는 이런 모습을 단 1초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.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겠지.

 

"공부 하다가 쓰러졌으면 쓰러져도 먼저 일어날 사람은 아니라 나와봤더니, 의외네."

 

"이런 걸로 약점 잡았다고 생각, 흐. 하지 마."

 

"그렇게 생각 안 해. 내가 뭐가 아쉽다고?"

 

 "하, 하아."

 

숨이 또 가빠진다.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 들켜서 더 그런 걸까, 아니면 도대체 왜. 솔B는 주저앉아 힘겹게 숨을 쉬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. 

 

"많이 힘든가 봐? 숨까지 몰아쉬는 거 보면."

 

'제발, 가라. 좀, 그냥 가. 무시하고 가라고, 강 솔B.'

 

지호는 대답할 힘도 없어 그저 그녀를 상기된 얼굴로 노려볼 수 밖엔 없었다. 하지만 그녀는 그런 눈빛에도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오히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.

 

"많이 화난 모양이네, 내가 도와줘?"

 

내가 미쳤다고 누구 도움을 받아. 차라리 여기서 죽어도 네 도움을 받을 것 같냐. 지호는 최대한 숨을 고르며 그 물음에 답했다.

 

"조금 있으면, 흐으. 진정될 거고. 너 도움 따윈 필요 없어."

 

"약으로 안된다는 건 효능이 한계라는 거 아닌가, 그깟 자존심 부리지 마. 나도 중학교 동창, 같은 스터디원 아니었으면 네가 다른 알파한테 걸려서 무슨 일을 당하든, 알 바 아니니까."

 

제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그녀가 참 밉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. 이 불편하고 이상한 감정은 뭐지. 너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, 그렇게 이야기 하려고 했었는데.

 

"...원하는 게, 뭔데."

 

"글쎄, 그냥 학연이라고 생각해. 어차피 너도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, 한 번 잘 생각해봐."

 

솔B는 그제야 그의 앞에 같이 쪼그려 앉고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지호에게 내밀었다. 이젠 그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.